논 의
본 연구에서는 Van Manen [
19]의 해석학적 현상학적 방법으로 살펴본 정신건강간호사의 정신질환자 돌봄체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자 한다.
첫 번째 주제인 ‘심한 증상도 감내해야 하는 몸’에서는 참여자들은 정신질환자 돌봄 과정에서 폭력으로 상해를 입기도 한다. 선행연구에서는 급성 정신과 병동 의료진 중 24~80%가 폭력을 경험하였으며, 폭력 피해자의 7.5~33%가 불안, 우울 등의 심리적 증상을 경험하였고, 간호사의 26%가 상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하였다[
21]. 이러한 폭력은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으로 이어져 간호사의 감정적 소진과 비인격화, 비효율성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17]. 그러므로 정신건강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인 외상과 공감피로에 대한 선행교육을 제공함으로써 폭력에 대한 대처행동과 인식을 향상시키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지지체계 강화와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본 연구의 참여자들은 자가간호가 어려운 환자들의 신체적 간호를 수행하면서 고단함을 경험하였다. 선행연구에서도 정신건강간호사들은 개인위생, 영양, 수면 등의 신체적 간호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데, 이는 신체적으로 힘든 업무이지만 오히려 환자와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16]. 참여자들은 강박증상이나 경련 등의 기이한 증상도 인내하며 돌보고 있는데, 선행연구에서도 강박증상은 불안이 감소될 때까지 무한 반복되는 특성 때문에 간호중재를 방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12]. 따라서 정신건강간호사는 신체적 간호나 기이한 증상에 대한 간호도 돌봄의 일부임을 인정하며 환자와의 관계형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주제인 ‘생채기를 다독이는 손’에서 참여자들은 환자가 학대의 피해자임을 알게 될 때 측은지심을 느끼며, 심한 증상들도 이해하고 공감하려 애쓰다 보면, 환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체험을 한다. Oh 등[
13]도 정신간호사가 환자의 감정을 지각하고 공감하면 환자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과 이해받는 느낌을 가지며 간호사를 신뢰하게 된다고 하였다. 참여자는 정신건강간호사 수련 과정을 통해 공감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하였지만, 환자와 라포를 맺는 중요한 기술인 경청과 공감에 대한 훈련과정이 미흡한 상태이므로, 정신건강간호사 교육과정에 보다 체계화된 훈련과정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공감이 비롯됨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직 선행연구에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이나 연민에 관한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정신간호사의 업무경험을 탐색한 연구에서는 ‘개인의 삶의 역사에 동행하기’라는 주제에서, 간호사는 환자가 살아온 생애 안에서 현재의 문제가 드러난 맥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3]. 이러한 노력이 곧 측은지심과 공감적 이해를 가져오고, 보다 확고한 치료적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고 본다.
세 번째 주제인 ‘폐쇄된 공간에서 느끼는 양가감정’에서는 열악한 폐쇄병동의 환경과 강제입원으로 자유를 구속당하는 환자에 대한 안쓰러움과 격리와 강박을 시행해야만 하는 간호사로서의 내적 갈등을 경험하였다. 정신간호사의 돌봄경험에 대한 선행연구에서도 환자에게 신체적 구속을 적용하는 역할을 맡을 때 간호사는 두려움과 갈등을 경험한다고 하였으며, 비자발적 입원이나 격리 및 강박은 환자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안전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하였다[
22]. 그러나 환자를 강박하는 과정에서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제거되었을 때 도덕적 관점에서 즉각적인 강박 해제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23]. 또한, 참여자들은 가족에게 버림받은 환자의 보호자 역할까지 맡기도 하였는데, 이는 정신건강간호사가 환자의 옹호자이며 가족이 환자를 이해하고 돌볼 수 있도록 교육할 책임이 있다고 보고한 선행연구[
11]와 같은 맥락이다. 정신질환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처지에 있으므로, 간호사가 환자의 가족보다 더 환자의 편이 되어주는 돌봄이 필요하다고 본다.
네 번째 주제인 ‘열린 세상에서 적응하게 함’에서 참여자들은 급성 증상이 감소된 환자들에게는 사회복귀를 위한 재활 과정이 중요함을 정신건강간호사 수련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퇴원기준에 대한 타 의료진과의 의견 불일치가 있거나 재활 시설과의 연계가 어려워 퇴원 후 행려 생활로 돌아가는 환자들에 대해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정신건강 복지에 관한 법률은 ‘탈원화’를 위한 방향으로 모색되고 있지만, 여전히 정신질환자들은 지역사회에서 돌봄을 제공받는 형태보다는 병원에 입원하는 사례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6]. 특히 퇴원 결정 과정에서 타 의료진과의 의견 불일치는 전문직으로서의 윤리의식과 현실적인 병원 경영 및 정책 사이에서 간호사에게 도덕적 고뇌를 느끼게 하며, 이로 인한 좌절감과 괴로움은 이직을 초래할 수 있다[
24]. 따라서 지역사회 재활 시설에 환자가 연계될 수 있도록 시설의 확충 및 체계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또한, 지역사회에 연계된 환자들의 경우, 참여자들은 증상관리와 지속적인 사회화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취업 현장에 방문하여 환자를 상담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Assertive Community Treatment (ACT) 모델 등을 기반으로 한 사례관리의 효과가 입증되어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나, 재정 및 인력의 부족으로 실제 수행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6]. 기초정신 건강복지센터와 정신재활 시설에서의 사례관리를 위한 예산을 확대하고 인력을 충원하는 등 정책지원을 통해 만성 정신장애인의 사회복귀를 돕는 정신건강전문요원의 소진을 예방해야 할 것이다.
다섯 번째 주제인 ‘다가감으로 함께하기’에서 참여자들은 불안해하는 환자 옆에 있어주고 위축된 환자에게도 자주 다가가 관심을 표현하면 환자는 간호사를 신뢰하며 라포가 형성된다. 물론 망상이나 환청 등의 급성기 증상이 심한 경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나, 환자는 간호사로부터 관심이나 세심한 배려를 받았다고 느낄 때 간호사를 신뢰하며 의존하게 된다[
25]. 또한, 참여자들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할 때 진정한 돌봄을 체험하였는데, 선행연구에서도 간호사가 환자 옆에 있어주는 것이 곧 그들을 존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간호사-환자’ 관계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친밀한 관계 형성과 지지적인 돌봄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26]. 참여자들은 일반간호사일 때 환자에 대한 편견을 강하게 경험하지만 수련 과정 후에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한층 넓어지면서 질병을 가진 인격체로 존중할 수 있게 되므로, 이러한 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환자가 변화될 수 있음을 진심으로 믿어주고, 가족처럼 보살피는 헌신적인 사랑이 환자를 회복으로 이끈다는 것을 체험한다. 선행연구에서도 이란의 정신간호사들은 어떤 보상이나 감사에 대한 기대 없이 환자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궁극적인 돌봄이 이루어짐을 체험하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16]. 이는 인간 돌봄에 있어 인본주의-이타주의를 강조한 Watson [
27]의 이론과 같은 맥락으로, 이타주의가 단순히 타인의 이익을 위한 사심 없는 희생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타인과의 관계 형성과 소통이 어려워 가족마저 돌보기 어려운 정신질환자들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정신건강간호사는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헌신과 사랑의 돌봄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여섯 번째 주제인 ‘서로 기대어 나아가기’에서 참여자들은 지역사회에서 환자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취업이나 증상관리, 재입원 과정에 자원이나 기관을 연계하는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가족 교육이나 가족과의 연대를 통해 환자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 선행연구에서도 가족의 요구를 조율하며 가족을 환자 치료의 중요한 자원으로 보고 중재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3]. 또한, 정신질환자의 치료는 궁극적으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므로 정신건강간호사를 포함한 전문요원들의 인력 확보와 지역사회 정신건강 전달체계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 정신건강을 위한 전문인력 수급의 부족과 과도한 행정업무, 기관 간의 연계 부족 등의 문제가 지속되고 있으므로[
8], 정신질환자 돌봄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이에 관한 대책 마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일곱 번째 주제인 ‘작은 빛이라도 지켜내는 시간’에서 참여자들은 처음엔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환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점차 먼저 다가가 라포를 맺는 것이 돌봄의 시작임을 체험한다. 그러나 퇴원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거나 재입원하는 환자를 보며 상처를 입고 무력감을 경험한다. 선행연구에서도 정신건강간호사는 잦은 재발과 재입원을 반복하는 환자를 보며 돌봄의 한계와 무력감을 자주 느낄 뿐만 아니라 자살이나 폭력과 같은 정신과적 응급상황으로 인해 일반병동의 간호사보다 더 많은 업무 긴장과 소진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28]. 이는 적극적 돌봄과 중재 의지를 감소시키고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들므로[
9], 특히 신규 간호사들이 겪는 돌봄의 한계와 무력감에 대한 깊은 공감을 통해 이를 극복하도록 돕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덟 번째 주제인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어감’에서 참여자들은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긴 여정에서 경력이 쌓일수록 점차 숙련된 전문가가 되어감을 체험한다. Yi 등[
29]은 간호사의 숙련성은 대상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 대인관계 능력, 전문지식과 기술 등 네 가지 속성으로 설명하였으며, Zarea 등[
16]은 충분한 자기조절 능력과 함께 직관력, 자기인식을 갖추어 전인적 관점으로 환자를 이해하는 것이 숙련된 간호사의 역량이라고 하였다. 본 연구의 참여자들은 단순히 오랜 근무경력뿐 아니라 정신건강간호사 수련 과정을 통해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고 환자에 대한 심층 면담과 컨퍼런스 참여 등 열정적인 노력으로 지식과 기술을 연마한 것이 숙련성의 기초를 이루며, 무엇보다 환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선행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숙련성은 환자에게 엄마처럼 따뜻하게 대하여 정서적 안정을 가져오는, 어머니 같은(mothering)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데[
30], 이는 연마된 대인관계 능력과도 관련된다. 또한, 참여자들은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자아성찰과 성장을 체험하는데, 이는 간호사의 가족관계, 직장 동료 및 팀과의 관계에서도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돌봄에 관한 선행연구에서 간호사의 소진과 이직이 강조된 것과는 달리[
7,
15], 정신건강간호사가 환자와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돌봄의 관계를 형성한다면 이것이 간호사 자신의 자아성찰과 삶의 변화라는 상호 돌봄의 의미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정신건강간호사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강화할 뿐 아니라 정신간호의 전문적 영역을 확고하게 해 준다. 특히 약물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중재한다는 점에서 사회복지사나 임상심리사와는 차별되는 전문성을 발휘한다.
본 연구에서는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정신건강간호사가 체험하는 돌봄의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균형 잡힌 시각으로 돌봄의 본질을 다루었다는 데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참여자들은 일반간호사일 때와 정신건강간호사의 수련을 거친 후에 공감 능력이 향상되고 환자에 대한 편견 감소로 휴머니즘에 입각한 접근이 가능해졌으며, 지역사회에서의 재활 과정이 중요함을 인식하게 되어 돌봄의 질이 높아졌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의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등 다른 직역의 치료자에 비해 어머니 같은(mothering) 역할을 통한 환자와의 신뢰 관계 형성, 약물 지식을 바탕으로 한 통합적 이해 등을 정신건강간호사의 강점으로 제시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정신건강간호사의 돌봄체험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병원과 지역사회에 근무하는 정신건강간호사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여 연구를 설계하였다. 그 결과, 환자들이 퇴원 후 지역사회 재활 기관으로의 연계가 부족한 이유를 양측 참여자들의 상반된 면담내용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즉, 병원 참여자들은 병원과 센터에서 연계를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거나 연계할만한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 반면, 지역사회에 근무하는 참여자들은 병원에 홍보를 해도 연계가 원활하지 않다고 하였다. 이는 상호 연계 시스템을 구축하고 협력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사점에도 불구하고, 연구결과’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어감‘,’다가감으로 함께하기‘등의 주제에서는 병원에 근무하는 참여자와 지역사회에 근무하는 참여자가 공통적으로 체험하는 돌봄이 나타나 있는 반면, 어떤 주제는 병원에 근무하는 참여자들에게만 나타나거나 지역사회에 근무하는 참여자들에게만 나타나 있었다. 이는 환자의 진단명이나 증상의 정도, 질병 진행과정에 따라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와 지역사회에서 재활하는 환자의 특성이 다르고, 이에 따른 정신건강간호사의 역할도 다소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추후 연구에서는 병원과 지역사회에서 근무하는 정신건강간호사를 분리하여 돌봄체험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근무하는 정신건강간호사는 환자의 재활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나, 지역사회에서의 정신건강간호사의 돌봄에 관한 선행연구는 거의 없으므로 추후 이에 초점을 둔 연구가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참여자들이 환자의 폭력이나 기이한 증상들을 감내하고, 가족마저 버린 환자들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제도나 정책의 미비로 참여자들의 어려움은 더욱 컸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환자 옆을 지키며 마침내 간호사라는 이름의 꽃을 피워냄으로써 진정한 돌봄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정신건강간호사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며, 정신질환자의 회복과 사회복귀에 있어서 정신건강간호사라는 힘과 자원이 기여하는 범위를 좀 더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